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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

by 동구르미 2022. 2. 15.

#영화 정보

 감독 : 왕가위

 장르 : 드라마, 멜로/로맨스

 출연진 : 장만옥, 왕조위 외

 배급사 : (주)디스테이션

 개봉일 : 2000년 10월 21일/ 재개봉 2020년 12월 24일

 상영시간 : 99분

 상영등급 : 15세 관람가

 

#줄거리

 1960년대 어느 날, 같은 날 같은 아파트로 이사 오는 두 가정의 이야기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상하이 특유의 좁고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에서 차우(양조위 역)와 수리첸(장만옥 역)은  짐을 옮기다 서로 스치며 어색한 인사를 겨우 건넸습니다. 짐을 정리하고 아파트의 생활에 적응해나가던 어느 날, 차우는 아내의 가방과 수리첸의 가방이 똑같다는 것을 깨닫고, 수리첸 역시 남편과 차우의 넥타이가 같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찾아온 차가운 불안감에 두 사람은 결국 자신들의 남편과 아내가 서로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동질감도 같은 외로움 때문일까, 수리첸과 차우 역시 서로에게 점점 가까워지지만, 곧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정리하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보고 느낀 점

20여 년이 지나도 화제가 되고 명작으로 불리는 데는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스토리마저도 왕가위 감독만의 섬세한 미장센 완성하는 연출력, 그리고 극을 이끄는 두 주인공의 역기력이 훌륭한 시너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20년 전의 패션과 극의 흐름, 젊은 배우의 얼굴 그리고  BGM은 지금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최근 만들어진 시대극으로 보이게도 합니다.

차우와 수리첸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과 갈등은 좁은 아파트의 복도, 벽을 사이에 두고 기대앉은 두 사람, 좁은 골목과 계단을 스치며 긴장감 가득하게 표현되고, 그 와중에 천천히 흐르는 BGM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Quizas Quizas Quizas)"는 더욱더 극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영화 내내 차우와 수리첸은 좁은 복도, 좁은 골목과 계단, 그리고 택시 안에서 마저 아슬아슬하게 일정한 간격을 두고 스쳐 지나갑니다. 한 번쯤 속 시원히 닿을 법도 한데, 누가 보는 것이 아님에도 닿을락 말락 띄워진 간격 속에서 각자의 고민과 갈등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우린 그들과 달라요." 잠시 흔들렸지만 외도한 배우자를 비난하기보다 스스로 도덕적인 선택을 하는 수리첸과 어쩌면 수리첸은 정말로 그들과 달라서가 아니라, 그들과 달라야만 하기에 차우가 아닌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이야기한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차우는 그런 수리첸의 마음을 알고 그녀를 위해 떠난 게 아닐까요.

 

마치 잔잔한 수면 아래서 급한 조류가 휘몰아치듯, 담담하고 조심스럽게 건네는 인사 뒤에 숨겨진 두 주인공의 고뇌가 영화를 보는 내내 두 눈을 떼지 못하게 합니다. 

누구에게나 선택의 시간은 찾아옵니다. 그 순간이 지나면 어떤 선택은 추억이 되고 어떤 선택은 후회가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순간들을 그 시간을 살았던 우리에게 분명 가장 아름답고도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비록 남들과 똑같은 선택, 똑같은 결말을 가져오더라도 그 선택의 순간에 닿기까지 생겨나는 치열한 고민들이 어쩌면 후회를 딛고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10년 뒤 아파트를 다시 찾은 수리첸은 과거의 어느 날을 회상하며 눈물짓고, 사원의 구석진 벽의 틈새로 전하지 못할 사랑을 고백하며 마음을 접는 차우의 모습에서, 우리는 비록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 하지만 당시에는 무엇보다 불행하고 고통스러웠을 그 순간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에게나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이 있습니다. 살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시간과 사건들은, 어떤 순간은 추억으로, 어떤 순간을 후회로 남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추억과 후회가 엮인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결국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 주인공들의 해피엔딩을 바랍니다. 그리고 저 마침표 다음의 이야기도 마냥 행복하기를, 우리의 삶과 다르게 다툼도 슬픔도 헤어짐도 없는 흠잡을 데 없는 삶을 바랍니다. 하지만 영화 '화양연화'가 오래도록 회자되는 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 마침표처럼 끝날 수 없는 각자의 이야기를 살아가기 때문은 아닐까요. 영화를 보는 내내 차우와 수리첸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해답이 서로에게 있다고 여겨지지만, 과연 서로를 선택하는 결말이었다면 이토록 오래도록 우리 기억 속에 남을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 '화양연화'는 2000년에 개봉한 왕가위 감독의 작품으로 양조위와 장만옥이 주연입니다. 제53회 칸 국제영화제의 남우주연상과 기술 대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20여 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보아도 여러 가지 감상에 젖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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